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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진선인(2006-08-09 23:22:14, 번호: 1056, 조회: 11450)
중국의 삼황오제는 전부 동이족, 한국인이었다!
배달(倍達民族) 혈통이 중국에 나라를 세워 중국을 지배했었다
중국의 삼황오제는 전부 동이족, 한국인이었다!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은 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는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堯)임금. 순(舜)임금을 말한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와 하(夏)나라, 은(殷)나라, 주(周)나라 때까지는 한족(漢族)의 존재가 중국에서는 없었음으로 중국의 상고사(上古史)는 동이족(東夷族)의 역사였고, 남쪽 변방의 남만(南蠻)족이 북상하면서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 중국의 역사서(歷史書)인 사기(史記)의 저자(著者), 사마천(司馬遷)은 황제헌원 이전의 유명한 인물이 모두 동이족(東夷族)인 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사기(史記)라는 책에서는 황제헌원(黃帝軒轅)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회피하였다.

황제헌원(黃帝軒轅)은 배달국(倍達國)의 8대 안부연(安夫連) 환웅 때, 강수(姜水,중국 섬서성)에서 소전(少典,벼슬이름)으로 있던 신농(神農) 아버지의 후손이 공손인데, 바로 공손의 후손이 황제헌원이다. 소호금천(少昊金天)은 배달국 시대에 산동 반도 지역에서 고도의 문명 국가를 통치했던 사람인데, 중국의 고사변(古史辯)을 보면, "소호씨는 동이계야(東夷系也)“”라고 하여 동이족(東夷族)임을 밝히고 있다. 전욱고양은 황제헌원의 손자이며, 제곡고신은 황제헌원의 증손자이다. 또한, 요(堯)임금은 황제헌원 및 제곡고신의 후손이다. 순(舜)임금은 고조선 단군 1세때, 고시(高矢)의 친형인 고수의 아들이다.

중국의 금(金)나라는 신라(新羅) 말 경순왕의 후손인 아골타(阿骨打)가 건국한 나라이며 김(金)씨가 세운 나라여서 나라 이름을 금(金)이라고 했다. 중국의 원(元)나라는 단군 4세 오사구의 아우 오사달의 후손인 홀필열(忽必烈)이 건국하였으며, 중국의 청(淸)나라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 금(金)나라를 세운 후, 그 후손이 다시 청나라를 건국한 것이다.

또한,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우임금(하夏나라의 시조). 탕임금(은殷나라의 시조). 문왕(주周나라의 시조). 무왕(주周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주周나라)도 역시 동이족(東夷族)이었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 서적인 서경(書經), 예기(禮記), 사기(史記)에 보면, 이들은 일상생활이나 대사(大事)를 집행할 때 언제나 삼신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지내며 생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禹)임금은 황제헌원의 후손이며, 전욱의 아들인 곤의 아들이다.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後金)을 세운 왕의 이름을 우리는 누루하치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누루하치의 성(性)은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애신각라(愛新覺羅)라는 성(性)은 원래 김(金)씨에게서 분가(分家)해 나간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府儀)의 성도 당연히 애신각라이다. 애신각라(愛新覺羅)라는 성(性)에는 무슨 뜻이 숨어 있는가? 애신(愛新)각라(覺羅), 즉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청(淸)나라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 금(金)나라를 세운 후, 그 후손이 다시 청나라를 건국했는데, 누루하치의 성(性)인 애신각라(愛新覺羅)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강태공(姜太公)은 진주(晋州) 강(姜)씨의 후손으로 한족(漢族)에게 신교(神敎)를 전수해 준 사람이다. 강태공은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하다가 문왕을 만나 넓은 식견과 지혜로 문왕의 스승이 되어 문왕이 죽은 뒤에 무왕을 도와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일으킨 인물이다.

태호(太昊) 복희(伏羲)는 배달국(倍達國)의 5대 태우 환웅의 12번째아들이며, 우사(雨師)직책을 수행했다고 한다. 복희(伏羲)씨는 최초로 동양 철학을 체계화 했으며, 음양오행과 태극기의 팔괘를 처음 그려낸 사람이다. 주역(周易)의 역철학을 처음 만드신 분이며, 혼인제도를 처음 만들었고, 문자를 제정했다고 한다. 침구를 처음 시작해 침(針)을 만들었고, 금슬(악기)은 물론, 백초(百草)를 맛보아 의학을 처음 개발해 냈으며, 양잠을 처음 시작했다 한다.

양잠은 바로 동이족의 조상이신 태호복희 때부터 시작했으니 바로 배달국 환웅시대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동이족은 상고시대부터 양잠을 시작해 각 시대의 조정에서 왕비들이 양잠의 책임자로 백성들의 양잠을 솔선 수범해 왔던 것이다. 특히 양자강 유역의 동이(東夷) 려(黎)족과 동이(東夷) 묘족의 양잠은 유명하여 그 전통이 지금의 항주 소주 인근에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태호복희는 풍산(風山) 출생으로, 풍(風)씨의 시조인데, 그 후 풍씨는 맥이 끊겨져 지금은 자손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중국 하남성 회양현에 그의 묘지가 있다. 중국인들은 동이족(東夷族)을 비하(卑下)하여 동이족인 태호복희의 형상을 사신인수(蛇身人首)의 형상으로 그려 놓았다고 한다.

염제(炎帝) 신농(神農)은 배달국(倍達國) 때의 사람이다. 신농(神農)씨는 온갖 풀맛을 보아 의약(醫藥)을 확립시켜 놓았으며, 백곡(百穀)을 정함으로써 천하만세에 농사법의 혜택을 많이 입혔다고 한다. 경농(耕農)과 의학의 창시자이며, 시장(市場) 제도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다.

시장이란 사람들이 물물생산해서 교역을 하는 장소를 말한다. 염제 신농(神農)은 진주(晋州) 강(姜)씨의 시조가 되는데, 신농(神農)의 아버지는 배달국(倍達國)의 8대 안부연(安夫連) 환웅 때, 소전(少典,벼슬이름)으로 있었으며, 강수(姜水)의 감병관으로 임명받고 강수(姜水,중국 섬서성)에 정착했다고 한다. 호남성 영현에 그의 묘지가 있다. 중국인들은 동이족(東夷族)을 비하(卑下)하여 동이족인 신농(神農)의 형상을 인신우수(人身牛首)의 형상으로 그려 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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