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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대곤(2007-03-01 21:07:04, 번호: 1075, 조회: 10347)
21세기 신과학 문명과 한민족의 전통사상
21세기 신과학 문명과 한민족의 전통사상

글│방건웅

양자역학이 발전함에 따라 우주에서 홀로 외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모두가 우주라는 거대한 유기체를 이루는 구성원이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정보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주는 홀로그램과 같아서 한구석에서 일어난 하찮은 일이라도 순식간에 우주 전체가 모두 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관을 일원론적 에너지론적 세계관이라고 구별지어 말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연구하는 과학을 일러 신과학이라고 한다. 과학계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독일어권에서는 사전에 신과학에 대한 정의가 실려 있을 정도로 세계는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뉴턴식 기계론의 맹점에서 벗어나는 여러 학문의 총체적 개념. 1)사물이나 사태를 분석하여 그 개별적 요소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전체적인 관계 및 상호 일관성의 측면에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관점. 2)주체는 만들고 객체는 만들어진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제 스스로를 만들어 간다는 ‘스스로 짜짓기(autopoiesis)’의 생명체적 관점, 3)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며 기대어 존재한다는 생태론식 관점 등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개되는 학문의 제분야. 대표적인 예로는 양자론, 카오스론, 구두끈론, 초월심리학, 형태장론, 신경망론, 온그림(hologram)론, 가이아론 등이 있다.』

모든 존재가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신과학의 입장

신과학의 특징을 종합하여 보면 자기 조직하고 자기 제어하면서 서로 연계되어 있다고 보는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조직하고 자기 제어한다고 하는 것은 곧 스스로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 낸다고 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다시 말하여 창발적 특성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신과학기술은 요소 부품을 중시하는 전통적 과학과 달리 전체적인 상호 연관성과 기능을 중시한다. 이것은 당연히 인간과 자연의 공존, 그리고 조화를 중시하는 방향의 기술개발을 의미하며 따라서 선순환의 기술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서양에서 뉴턴 이래로 발전되어온 기술을 비유한다면 열역학 제 2 법칙에 해당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칙은 우주의 무질서도를 가리키는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모든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 그 내용인데 물질문명은 곧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에 기초를 두고 발전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함에 따라 에너지원이 고갈되면서 인류는 죽음의 길로 달려가고 있으며 이것을 열적 죽음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에 반하여 새로이 등장하고 있는 신과학기술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엔트로피 감소현상을 응용하는 것이 다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체나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기술들이며, 사용할수록 엔트로피가 감소하므로 생명의 기술이라고도 한다. 사실상 열역학 제 2법칙은 격리된 닫힌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법칙이지 자연계처럼 열린 세계에는 적용될 수가 없다. 우주는 스스로 순환하는 에너지가 있어 지금도 운행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것은 원자 차원에서나 먼 우주의 별에서나 같다.
우주에는 항상 음양이 있어 서로 순환하면서 변화한다. 엔트로피도 마찬가지로서 한쪽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면 다른 한쪽에선 엔트로피가 감소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엔트로피 순환의 원리라고 이름짓는다면 물질문명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기술은 반쪽기술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쪽기술의 사고체계로 반대현상에 기초를 둔 다른 반쪽의 기술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우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음양순환의 원리에 따라 자연현상들을 연구하고 관조하여 나머지 반쪽의 기술을 적극 개발해서 엔트로피 증가와 감소의 온전한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과학기술이 바로 신과학기술이다.
이제 곳곳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물질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우주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동양의 오랜 세계관을 다시 돌아보아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지금 서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의 추세를 보면 주류의 과학기술자들은 기존의 물질론에 바탕을 둔 해결방식을 계속 추구하고 있는 반면에 앞날을 내다보는 통찰력을 지닌 일부 과학기술자들은 물질론의 한계를 물질론적인 사고방식이나 해법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세계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동양의 전일(全一)적인 세계관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일적 세계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태백진훈>에서 말하는 우주는 하나의 에너지적 존재

고려 말의 충신으로서 문하시중을 지낸 행촌 이암 선생은 <환단고기>에 있는 <단군세기>뿐만 아니라 또 다른 저작인 <태백진훈>을 남겨 놓았다. 그는 <태백진훈>에서 말하기를 ‘우주는 일기(一氣)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우주는 하나의 에너지적 존재라는 것이다. 일기(一氣), 곧 한 기운의 상태는 극성(極性)이 생겨나기 전의 상태로서 무극(無極)을 말한다. 극성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플러스와 마이너스인데 이는 곧 음과 양이다. 이 말은 우주는 에너지적 존재이며 이것이 우주의 실상이라고 밝힌 것으로서 에너지론적 일원론의 세계관과 부합한다. 오늘날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내용인 데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질과 에너지가 둘이 아니며 근원인 에너지는 갈라지지 않은 무극의 상태라고 하는 이 말은 엄청난 직관에 의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통찰이다. 행촌 선생은 부연하여 설명하기를 일기(一氣)는 또한 양기(良氣)이며 일신(一神)이기도 하다고 말하였다. 일신(一神)은 말 그대로 하나님이다. 과학과 종교의 합일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가?
일(一),즉 하나는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眞)과 망(妄)의 개념을 먼저 익힐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삼일신고>에 나오는 말로서, 철인 임아상은 삼일신고 주에서 설명하기를 진(眞)은 하나가 되어 갈라짐이 없는 것(唯一無二)을 뜻하며 망(妄)은 갈라져서 하나가 되지 못한 것(岐而不一)을 뜻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일기(一氣)는 극성화가 일어나기 전, 즉 무극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행촌 이암은 <단군세기>서(序)에서 마음이 정(定)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진아(眞我)라 하였다. 이것은 곧 하나가 되어 주체를 회복한 개체를 의미하며 따라서 개일(個一)이라 할 수 있다. 이 개일들이 모여서 큰 하나를 이루면 개일들은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세포들이 모여서 간, 폐, 위장 등과 같은 장기를 이루고 더 나아가 인체를 이루게 되면서 겪는 경험과 같다. 각 세포의 수준에서 겪는 경험과 인체의 수준에서 경험하는 차원은 다르다. 배우는 내용에서 크게 차이가 나며 이루는 결과도 차원이 다른 것이다. 세포들이 온전하게 뭉쳐서 하나처럼 움직이므로 이를 개일(個一)과 구분하여 전일(全一)이라 한다. 이 전일(全一)은 그 스스로가 또 다시 개일(個一)이 되면서 다른 전일(全一)과 더불어 보다 더 큰 하나를 이루어 위의 과정을 반복한다. 이를 일십당 이맥은 <태백일사>의 환국본기에서 ‘대동귀일(大同歸一)’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개(個)와 전(全)은 하나(個全一如)라는 33세 단군 감물의 말이나 행촌 이암의 아래와 같은 말도 이를 뜻하는 것이다.

… 허(虛)와 조(粗) 는 한몸이며, 개(個)와 전(全)은 하나이므로 지(智)와 생(生)을 같이 닦고 형(形)과 혼(魂)을 함께 넓혀 진교(眞敎)를 세워 믿기를 오래하면 승세는 자명합니다 … 단군 감물, <단군세기>

… 그러나 내가 이른바 하나라 함은 고립이 아니오 곧 무리와 함께 함이니 두목과 지체가 모아져 한 몸이 되고, 부부와 형제가 모아져 한집이 되고, 군신과 인민이 모아져 한나라가 되는 것이다… <태백진훈>

따라서 일(一)은 주체를 회복하여 스스로 살아 있는 개체를 뜻하면서 동시에 큰 하나를 뜻하니 ‘일(一)은 대일(大一)이다’ 라는 말은 이를 뜻한다. 일(一)은 주체를 회복한 하나(一)의 개체에서 시작하여 큰 하나(一)에서 끝나고, 커진 하나(一)에서 또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일(一)은 속(續)이며 개일(個一)과 전일(全一)의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개체는 더욱 큰 하나가 되어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경험의 폭이 넓어진다. 이와 같은 배움의 과정에 대해서 행촌 이암은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하였다.

… 배우려면 가지런함을 익혀야 한다. 가지런하면 뜻이 하나로 되고하나로 되면 분쟁이 멈춘다. 그러므로 선인들은 배우기 위하여 한 세상 사람으로 집안의 가지런함을 익히고, 한 집안 사람으로 마을과 가지런함을 익히고, 한 마을 사람으로 나라와 가지런함을 익히고, 한 나라 사람으로 천하와 가지런함을 익히고, 천하만세의 사람은 삼신(三神)과 가지런함을 익히니신(神)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고 스스로 그러한 것은 바로 배움이다. <태백진훈>

위의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생물체의 특성인 창발적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니 자연히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구에서는 창발적 특성만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행촌 선생은 오히려 더 나아가서 신(神)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고(神是自然) 스스로 그러한 것은 배움이다(自然是學)라고 하여 그 이유까지도 밝혀 놓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주의 자기 조직하는 속성이 본디 스스로 그러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가지런하게 자기 조직하여 새로운 기능을 창발하면서 배워나가는 것이 우주의 본 모습이다라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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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는 창발적 특성만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행촌 선생은 오히려 더 나아가서 신(神)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고(神是自然)

스스로 그러한 것은 배움이다(自然是學)라고 하여

그 이유까지도 밝혀 놓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주의 자기 조직하는

속성이 본디 스스로 그러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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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배태될 때 뿌리 내리는 심(心) 기(氣) 신(身)

<태백일사>의 소도경전본훈에 보면 일기(一氣)는 무극(無極)의 상태인데 스스로 중일(中一)의 신(神)이 있어 능히 삼(三)이 되면서 사람과 만물(人物)이 생겨나며 이 때 모두 한 모습으로 삼진(三眞), 곧 성(性), 명(命), 정(精)을 타고난다고 하였다. 사람과 만물의 차이는 사람이 삼진(三眞)을 고루 받는데 비하여 만물들은 제각기 품성에 따라 치우치게 받는다 하였다(人物同受三眞… 人全之 物偏之). 스스로 중일(中一)의 신(神)이 있어 능히 삼(三)이 된다는 것은 자기 조직하여 자기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셋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우선 <삼일신고>의 내용을 좀 더 훑어보자.
반안군왕 야발이 쓴 삼일신고서(序)에 보면 하늘이 내려주는 성(性)은 본래 진망(眞妄)이 없는데 이를 받는 사람의 품격에 순수함과 얼룩(粹駁)이 있는 것이, 비유한다면 하늘의 달은 하나이나 온갖 내(川)에 비치는 달은 물의 맑고 깨끗함과 물결이 이는 정도에 따라 다른 모습이고, 하늘에서 오는 비는 같아도 온갖 종류의 풀과 꽃들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 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람과 만물이 배태되는 초기’迷地’, 즉 물질계에 나타나는 때에 삼망(三妄), 곧 심(心), 기(氣), 신(身)이 뿌리를 내린다고 삼일신고 주(註)에서 임아상 철인은 설명하였다.
삼진(三眞)과 삼망(三妄)이 맞서서 삼도(三途)를 지어내니 감(感), 식(息), 촉(觸)이라고 하였다. 감(感)에는 희(喜), 구(懼), 애(哀), 노(怒), 탐(貪), 염(厭) 의 6 가지가 있고 식(息)에는 분(芬), 란(寒)한(寒), 열(熱), 진(震), 습(濕)의 6 가지가 있으며 촉(觸)에는 성(聲), 색(色), 취(臭), 미(味), 음(淫), 저(抵)의 6 가지가 있다고 되어 있다. 뭇 사람들은 이 18 가지의 경로를 따라 마음 내키는 대로 헤매다가 죽는다 하였다. 삼도(三途)의 도(途)는 길은 길이로되 갈라진 길이라는 의미에서 도(道)와 구분하여 표기하는 것이다.
성(性)과 심(心), 그리고 감(感)을 백포 서일은 <회삼경>에서 이(理)라고 하였으며 명(命)과 기(氣), 그리고 식(息)을 기(氣)라 하였고 정(精)과 신(身), 그리고 촉(觸)을 기(機)라고 하였다. 이(理), 기(氣), 기(機)는 또한 환단고기에 따르면 허(虛), 조(粗), 허조동체(虛粗同體)라고도 표현된다. 말 그대로 빈 것, 거친 것, 그리고 한 몸이 된 것을 뜻한다. 이(理)는 곧 정보를 의미하며, 기(氣)는 에너지를 뜻하고, 기(機)는 움직이는 기틀을 의미한다. 환단고기에서 나오는 외허내공(外虛內空)이라는 말에서 허(虛)는 경계가 없는 빈 것이고 공(空)은 경계면 안쪽의 빈 것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理)가 허(虛)라 함은 이(理)는 우주 전역에 걸쳐 경계가 없이 보편 타당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유추 해석할 수도 있다.

창세의 과정은 극성화(極性化)에 의한 것

위의 설명에서 우리는 세상이 창조되는 과정은 극성화에 의한 것이라는 의미를 감지할 수 있다. 즉 하나가 둘로 갈라지면서 사람을 위시하여 온갖 만물이 생성되어 나오는 것이다. 성(性)과 심(心)이 맞서서 감(感)을 일으키며, 마찬가지로 명(命)과 기(氣)가 맞서서 식(息)을 일으키고, 정(精)과 신(身)이 맞서서 촉(觸)을 일으킨다. 그러나 만물이 움직이는 원리는 셋이 하나로 어우러져 작동하는데 있으며 셋이 하나가 된 상태를 허조동체(虛粗同體)라고 한다.
최근 IBM에서는 어느 특정 물체를 해체하면서 양자상태에 대한 정보를 읽어낸 다음에 이 정보를 전송하여 먼 곳에서 다시 그대로 만들어내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으며 그 실마리도 확보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은 다시 말하여 물체의 정보, 이(理)를 읽어내어 전송하면 어느 곳에나 있는 일기(一氣)를 정보대로 모아서 물체인 기(機)를 만든다는 것으로서 쉽게 말하자면 입체 팩스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삼일신고의 내용과 일치하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理), 기(氣), 기(機)들간의 관계는 심(心), 기(氣), 신(身)을 예로 들어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심(心)은 글자 그대로 마음이고, 기(氣)는 원동력이 되는 에너지이며, 신(身)은 몸이다. 컴퓨터에 비유한다면 심(心)은 소프트웨어이고, 기(氣)는 전기에너지이며, 신(身)은 하드웨어가 된다. 이 셋이 같이 어우러지므로 하여 컴퓨터는 완벽하게 작동할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심(心), 기(氣), 신(身)을 고루 갖추어야 제대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마음(心)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며, 기(氣)가 거의 없어진 사람은 식물인간이고, 몸(身)이 없으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심(心)과 기(氣)가 없는 상태는 죽은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서, 전원이 꺼진 채로 본체만 덜렁 있는 컴퓨터와 같다.
위의 3가지 요소들을 따로 따로 떼어서 그 역할을 구별하여 생각하기는 쉬우나 실제로 이들을 따로 따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동하는 컴퓨터에서 이들 중 어느 하나를 따로 떼어낼 수 있겠는가? 행촌 이암이 셋은 셋이로되 나눌 수 없는 셋이라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세 요소가 완전히 융합되어 서로 협력하면서 작용하고 있는 이것이 하나를 잡으면 셋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집일함삼(執一含三)의 의미이며 또한 한 몸으로서 셋으로 작용한다고 하는 일체삼용(一體三用)의 의미이기도 하다. <태백일사>에서 체(體)와 용(用)은 갈라짐이 없다(體用無岐)고 한 것도 같은 내용으로서 사람과 만물이 모두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 존재임을 뜻한다. 이를 행촌 이암은 <태백진훈>에서 허조동체(虛粗同體)가 되면서 사람과 만물이 태어난다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서양의 물질론적 세계관과는 차원이 다른 고도의 수준 높은 세계관이다. 물심일원론이나 물심이원론과는 또 다른 정교한 설명으로서 세상 만물이 움직이는 원리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일원론적 세계관이면서도 체(體)와 용(用)의 관계를 통한 역동적 작용에 대한 이해는 우주의 작동 원리까지 밝힌 것으로서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빼어난 내용이다. 아직까지 현대과학에서는 이러한 인식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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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心), 기(氣), 신(身)을 고루 갖추어야

제대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마음(心)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며, 기(氣)가 거의 없어진 사람은

식물인간이고, 몸(身)이 없으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심(心)과 기(氣)가 없는 상태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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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는 삼신(三神)은 하나(一)

<태백진훈>에서 주체는 하나이며 신(神)이 각각 있는 것이 아니고 작용하는 것이 삼신(三神)이라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主體爲一 非各有神 作用三神). <태백일사>의 삼신오제본기에서도 보면 ‘주체는 곧 일상제(一 上帝)며 각기 신(神)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작용이 삼신(三神)인 것이다’고 하였다. 또한 ‘유원(惟元)의 기(氣)와 至의 신(神)은 스스로 집일함삼(執一含三)의 충실한 광휘가 있는 것이다’한 것도 같은 내용으로서 유원(惟元)의 기(氣)는 일기(一氣)를 뜻하고 지묘(至 )의 신(神)은 삼신(三神)을 뜻하는 것이다. <태백일사>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에서 ‘안에 있는 삼신(三神)은 하나(一)’라고 한 것도 같은 의미이다.

… 집일함삼(執一含三)하는 까닭은 곧 일(一)이 그 기(氣)이고 삼(三)이 그 신(神)이기 때문이다. 회삼귀일(會三歸一)하는 까닭은 이 또한 신(神)이 삼(三)이 되고 기(氣)가 일(一)이 되기 때문이다. 무릇 살아 있는 자의 체(體)는 이 일기(一氣)이다. 일기(一氣)의 안에 삼신(三神)이 있다. 지혜의 근원도 또한 삼신(三神)에 있다. 삼신(三神)의 밖을 일기(一氣)가 싸고 있다. 그 밖에 있는 것이 일(一)이며, 안에 있는 것이 이 일(一)이며, 그 통제도 일(一)인데 역시 모두 포함되어 모여 있으니 갈라지지 않는다 … <소도경전본훈>

행촌 이암은 <태백진훈>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면 도(道)가 생기고 허조(虛粗)가 서로 나누어지면 도(道)에서 떨어진다고 하였다(天地一而道生 虛粗分而道離). 부연하여 말하기를 허조(虛粗)는 이기(理氣)라고도 한다 하였다(虛粗一作理氣). 또한 허(虛)는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부증부감(不增不減)하며, 조(粗)는 능생능멸(能生能滅)하고 능증능감(能增能減)한다고 하였다. 마음(心)은 비었으니 생멸증감(生滅增減)이 없어 허(虛)이고, 에너지(氣)의 흐름에 의해 생멸증감이 있어 거칠음이 일게 되니 조(粗)이고, 기틀(身)은 이 둘이 같이 있으므로 하여 체(體)로서 작동하게 되므로 허조동체(虛粗同體)가 되는 것이다. 이를 <태백진훈>에서는 ‘이(理) 하나는 허(虛)이고, 기(氣) 하나는 조(粗)이다. 동체(同體)가 기틀(機)을 이끄니 묘하고 또 묘하도다(理一也虛 氣一也粗 同體引機 之于 )’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허조(虛粗)는 일기(一氣)와 동체(同體)라고 한 것도 같은 내용이다. ‘夫所謂虛粗者 自是一氣同體而已’
이러한 관계는 현묘(玄妙)의 개념과도 상통한다. <태백일사>의 소도경전본훈에 보면 ‘셋이 하나임은 그 체(體)이고(三一其體) 하나가 셋임은 그 쓰임이다(一三其用)’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서 삼일기체(三一其體)는 현(玄)이고 일삼기용(一三其用)은 묘(妙)이니 고운 최치원이 나라에 현묘지도(玄妙之道)가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행촌 이암은 현묘(玄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비었으면서 빈 바가 없고, 밝으면서 밝은 바가 없고, 굳세면서 굳센 바가 없는 것으로 삼신과 더불어 기틀(機) 없는 일체(一體)로서 한몸(同體)인 것을 玄이라 한다. 빈 바가 없으면서 비었고, 밝은 바가 없으면서 밝고, 굳센 바가 없으면서 굳세어서 능히 스스로의 신(神)으로 화(化)하여 선(善)이 되어 아름다움이 완전한 것을 묘(妙)라 한다. 이 알체삼신(一體三神)은 능히 천하만세에 통하는 것이다 … <태백진훈>

또한 <태백일사>에서는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원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찬탄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만물의 원리가 덕(德), 혜(慧), 력(力)이 되었다 함은 만물의 원리가 바로 신(神)임을 가리킨다. 삼신일체(三神一體)는 곧 신(神)이다. 신(神)도 일체(一體)이고 사람도 일체(一體)이다.

… 크도다, 삼신일체(三神一體)가 만물의 원리가 됨이여! 만물의 원리는 덕(德)이 되고 지혜(慧)가 되고, 힘(力)이 되는구나. 높고도 넓어서 세상에 가득 차는구나!
현묘(玄妙)하여 불가사의한 것이 운행이구나!… <소도경전본훈>

위와 같은 연유로 심(心), 기(氣), 신(身)중에서 유독 신(身)만을 신체(身體)라고 부르는 것이다. 천(天), 지(地), 인(人)중에서 인(人)만을 인체(人體)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비유한다면 신(身)은 컴퓨터의 하드웨어만을 가리키나 신체(身體)는 소프트웨어와 전기에너지가 같이 있어 작동하는 컴퓨터를 가리킨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몸은 신체(身體)이고 죽은 사람의 몸은 시신(屍身)이다.

도(道)는 천지(天地)에서, 화(化)는 사람(人)에게서

허(虛), 조(粗), 허조동체(虛粗同體)의 관계는 천(天), 지(地), 인(人)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앞서의 성(性), 명(命), 정(精) 삼진도 천, 지, 인에 해당한다. 심(心), 기(氣), 신(身)도 마찬가지이다. 천(天)인 조화신은 창조, 개벽하는데 이것은 허(虛)이며 창조는 먼저 마음(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지(地)인 교화신은 창조의 과정을 통해 알게 되면서 진화하는데 이것은 조(粗)이며 진화는 에너지의 흐름(氣)에 의해 얻어지는 구동력으로 진행된다. 창조와 진화의 순환에 의해 재창조가 이루어지면서 이 연결고리는 계속 이어진다. 순환의 기틀(身)은 인(人)인 치화신(治化神)이 맡은 것으로서 창조와 진화의 순환고리가 그 안에서 이어지므로 허조동체(身體)이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서는 이 관계를 ‘… 무릇 천하의 모든 만물은 개벽이 있어 생기고(存), 진화가 있어 머물고(在), 순환이 있어 있는(有) 것이다 … ‘라고 표현하였다.
행촌 이암이 ‘도(道)는 하늘(天)과 땅(地)에서 나오고 화(化)는 사람에게서 이루어진다(其道出於天地而 其化成於人者也)’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늘과 땅이 합하여 도(道)가 나오는 것은 곧 허조(虛粗)가 같이 있는 것이며 사람이 있어 허조동체(虛粗同體)가 되면서 화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천부경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구절도 사람이 중(中)이 되어 하늘과 땅이 하나의 허조동체가 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태백일사>에 실려 있는 다물흥방지가(多勿興邦之歌)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됨이여
마음은 몸과 더불어 근본이 되네
하나인고로 그 허(虛)와 조(粗)는 같으며
근본인고로 유신(惟紳)과 유물(惟物)이 둘이
아니라네
원문:人中天地爲一兮 心與身卽本
爲一故 其虛其粗是同 卽本故 惟神惟物不二

위의 내용에 있는 것처럼 만물의 생성과정과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나면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이라고 하는 수수께끼 같은 구절이 무슨 뜻인지 절로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도덕경이 먼저인지 삼일신고가 먼저인지 구분하기가 힘들게 된다.
물질론적 세계관에서 주장하듯이 우주가 물질만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주가 컴퓨터 본체만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또한 물심이원론은 물질과 마음의 상호 관계가 없다고 하는 것인데 위의 내용에 따른다면 그것은 우주의 작동 원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주는 가만 멈추어 있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원리가 항상 역동적으로 작용하면서 움직이는 동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마음과 몸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이들은 둘이 아니며 그러면서도 둘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생명체뿐만 아니라 만물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물체도 의식이 있어야 하므로 인간의 생각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최근 들어 이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실험적 결과가 미국의 프린스톤 대학을 위시하여 몇몇 곳에서 발표되고 있다. 이외에도 생각에 의해 기체의 전기적 특성이 변한다거나 물의 전기적 성질이 변한다거나 하는 등의 논문들이 여러 편 발표된 바 있다. 우주는 하나의 의식체라고 하는 과감한 주장이 나오는 배경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미 이러한 내용을 분명하게, 그것도 아주 정교하게 밝혀 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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